الأحد، 26 سبتمبر 2010

Jump break mark test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서시>

윤동주는 조부 때부터 기독교 신앙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기독교를 믿어온 모태신앙의 소유자다. 그러나 윤동주는 연희전문 시절 극심한 종교적 회의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가 종교적 회의에 시달리게 된 원인은 여러가
지가 있겠지만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던 순결한 양심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기독교는 내세주의, 또는 초월주의적인 종교이다. 하나님을 믿으면 내세의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그 근본 교리이다. 기독교의 이러한 교리는 자칫하면 현실의 모순을 외면하고 내세의 구원만을 추구하게 할 위험을 안고 있다. 순결한 정신의 소유자로서 윤동주는 기독교의 그러한 초월주의를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시 <팔복>은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을 패로디하여 "슬퍼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를 여덟번이나 반복한 뒤 그들에게는 영원한 슬픔만이 있을 뿐이라는 내용으로 결론을 내려 성경의 내용을 뒤집고 있다. 지상적인 슬픔을 참고 인내하는 것만으로 영생이 보장되고 천국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에서 비롯된 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깨달음은 신이 인간을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계에 창조한 이유를 고민한 흔적이 나타나는 <태초의 아침>에서도 보이는데 윤동주는 기독교의 초월주의적 성격에 대한 회의를 통해 인간이 이 세상에 보내진 이유를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계 속에서 악과 대결하여 지상 세계를 낙원으로 만들라는 신의 예정에 의한 것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서시>는 윤동주 시집 전체를 대표하는 시로 초월적인 신앙을 극복하고 운명에 대한 긍정과 역사에 대한 소명의식을 보여주는 시이다. 첫연에는 삶의 도덕적 순결성을 지향하는 윤동주의 삶의 지표와 그렇지 못한 자신에 대한 반성이 나타나 있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라는 구절은 그의 초월적인 세계에 대한 지향과 도덕적 순결성을 잘 보여준다. 이런 초월적인 세계에 대한 지향은 현실 속에서
의 삶 자체를 괴로운 것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잎새에 이는 바람"이란 나무 잎새를 흔들 정도의 아주 작은 바람은 의미한다. 아주 작은 바람에도 잎새가 흔들리 듯 시인은 현실의 작은 풍파에도 괴로워 할 정도로 나약했다는 것을 말한다.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들은 초월적인 신앙에 대한 반성을 통해 운명에 대한 인식과 역사에 대한 소명의식으로 나아가고 있는 윤동주
의 의식 변화를 보여준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것은 초월적인 천상적 세계를 노래하던 마음으로 이제는 죽어가는 모든 것, 즉 운명을 타고난 지상적인 모든 생명을 사랑하겠다는 말이며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라는 구절은 동시에 그것을 하늘이 부여한 운명으로 알고 실천해 나가겠다는 소명의식을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과거시제에서 현재시제로 이동하면서 과거의 초월적인 신앙을 반성하고 현실에 대한 긍정을 보여주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지금까지 초월적인 차원에서 추구되던 별은 윤리의식의 거울이 되며 하늘을 노래하는 것과 똑같은 정도로 지상적인 삶과 생명을 사랑하겠다는 역사적 소명감으로 발전하고 있다. 천상적인 세계 속에만 존재하던 별과 하늘은 지상적인 별과 하늘이 될 수 있으며 그는 하늘의 세계를 지상에 이룩하는 것을 자신의 과업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ليست هناك تعليقات:

إرسال تعليق